We ARE (NOT what you think or say you are BUT) what we REPEATEDLY do...
[예제] 이 기사에서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는것은? ^.*
1. 차떼기로 돈살포
2. 들키자 짜르고 총알같이 대타 투입
3. 딱 한번만 더 믿고 밀어주쎄여~흑흑 징징거림
4. 거봐라 내가 그넘 안된댓자너 하는 넘도 나타남
5. 안바도 비됴...전부 다
ㅎㅎㅎㅎㅎ 븅.... :D
more..
[또다른반복] 자고로 저런넘덜이 잇는가하면 또 이런사람도 잇엇고...
[디지털말 2004.7.15]
'국제주의자’ 안중근의 이루지 못한 꿈, 동북아의 수평적 연대
안중근과 신동북아시대 / 동양평화론
이태준 기자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다. 미국이 최근 진행 중인 병력 재배치의 속내는 지금까지의 동북아 패권에 효율성까지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재적 주적’인 중국을 겨냥,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면서 주한, 주일 미군의 작전지역을 은근히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야망도 만만치 않다. 단적인 예가 북핵 6자회담에서 핵심적 역할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의 안간힘이다. 중국은 6자회담 사무국을 북경에 두고 싶어 한다. 아편전쟁 뒤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관계를 주도하는 셈이다.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북핵을 빌미로 군비를 늘리며 평화헌법을 개정할 준비를 완료했다.
남북한과 일본을 가운데 두고 중국, 러시아, 미국이 둘러싸고 있는 이 동북아 지역에, 앞으로 상황에 따라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다시 충돌하는 ‘신냉전구도’가 자리잡을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에서 호혜적 협력과 평화체제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점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동북아의 수평적 연대’를 꿈꿨던 안중근에게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 동북아 삼국과 세계를 감탄시킨 일대 쾌거였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은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당시 그는 여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동양평화론을 마무리할 때까지 형집행을 미뤄달라고 법원에 요청한다. 안중근은 실제로 항소하지 않았으나 일본측은 선고일로부터 불과 한달여 지난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을 살해한다. 그래서 동양평화론은 서문에 그친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뒤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장과 면담한 기록(「청취서」)이 발견되어 그가 구상했던 동양평화론의 밑그림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중국 대련시에서 개최할 예정인 ‘안중근 포럼’을 준비 중인 김영호 유한대 학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에 따르면 이 면담 기록을 발굴한 사람은 최서면 전 동경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이다.
김영호 학장은 “안중근은 한국민족주의자이며 국제주의자였다”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도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동양평화론자로서 취한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에 이미 안중근은 “동북아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안중근 플랜’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그 ‘틀’의 핵심을 현대적인 용어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동북아 공동안보체제와 국제평화군 창설
△ 동북아 개발은행과 공동화폐 발행 사업
이제 안중근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안중근의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구상
“새로운 정책은 여순을 개방한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에서 대표를 파견해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한 뒤 이를 공표하는 것이다. … 일본을 노리는 열강에 대응하기 위해 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의 3국에서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다루게 한다. 세 나라의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는 2개국 이상 어학을 배우게 하여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이 높아지도록 지도한다.” (「청취서」, 강조는 인용자)
당시 일본이 강점하고 있던 여순은 동북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그리고 안중근은 일본 역시 이완용 등 “개만도 못한 놈”(안중근의 표현)을 앞세워 “한국 황제를 비롯해 한국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여순을 강점하는 등의 행위로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자국 중심의 야욕으로 이웃 나라까지 희생시켜가며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는 바람에 다음과 같은 일이 예측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론이 한청(韓淸) 양국인의 폐부(肺腑)에서 용솟음쳐서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형세이다.”
또한 “러시아, 청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일본을 응징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자국에 대한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 중과 다시 호혜적 관계를 정립, 동북아 평화를 확립해야할 터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안중근은 일본에게 여순을 다시 중국에 돌려주고 이곳에 한, 중, 일 삼국의 대표로 이루어진 (동양)평화회의를 설치하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세계 열강이 노리는 여순을 한, 중, 일이 공동 관리하자는 것이다. 현대적 용어로 풀자면 일종의 ‘동북아 공동안보회의’인 셈이다.
이렇게 동북아 국가 간의 평화가 이루어지면 일본도 서구세력의 침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한, 중, 일 삼국이 국제평화군을 편성해서 공동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동북아 경제협력’ 구상
한편 안중근은 한국과 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재정부족이라는 경제적 문제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정책이 궁지에서 나온 것임은 나도 이해한다”며 “일본은 재정이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어서 그것을 청과 한국 두 나라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안중근은 일본의 재정난을 일본의 문제로 방치해둘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인 한국과 청이 함께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동북아 3국이 모두 번영하는 방향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도 굉장히 대담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바로 한, 청, 일 3국이 조직한 동양평화회의에서 회원국 수억 명의 국민들로부터 1원씩 모은 것을 자본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이 은행을 통해 공동 화폐를 발행하여 신용을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창출된 신용과 공동 화폐는 일본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를 살린 일본이 한국, 중국과 긴밀히 경제협력을 추진해가면 동양 삼국에서 함께 상공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안중근은 믿었다. 최근의 동북아개발은행이나 한, 중, 일 공동 화폐를 1백년 전의 안중근이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연대의 두가지 길
어쩌면 독자들은 이처럼 일본에 너무도 호의적인 것으로 보이는 안중근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우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재정문제 때문에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에 이른’ 일본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구상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20세기 초 한일 양국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침략적인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가 연대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상당수의 한국 지식인들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전 독립협회장 안경수는 1900년 동경에 망명해있던 중 잡지 『일본인』을 통해 △한청일 철도개통으로 무역로 확보 △서해안 공동어장개발 △한중일 자원 결합한 공동경제발전 등을 주장했다. 명분은 ‘삼국 군사동맹과 상업동맹으로 서양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이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이기(李沂) 같은 사람은 “동양삼국은 3개 다리로만 같이 설 수 있는 솥과 같다”는‘삼정론’(三鼎論)을 항일지였던 『대한매일신보』에 기고한 바 있다. ‘한중일 연대론’은 당시의 지식인 사회를 풍미했던 이념이었다. 심지어 이토오 히로부미도 나름대로의 동양평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1908년 11월4일자 『만주일일신문』에는 이토의 ‘극동평화론’이란 연설이 실려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연대론’엔 엄청난 위험이 숨어 있었다.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연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과연 어느 나라를 중심으로 뭉칠 것인가. 즉 어느 나라가 중심국가(허브)가 되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20세기 초의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일본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안경수는 이후 친일파로 전락하고 만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의식이 동북아 국가 중 최강인 일본의 힘에 기대자는 것으로, 그리고 친일론으로 폭주한 결과이다. 이토의 극동평화론도 “‘동양평화를 위해 한, 중이 죽어달라는 이야기였다”고 김영호 학장은 설명한다. 이를 ’동아시아의 수직적 연대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 ’대동아 공영론‘도 그 아류다. 그래서 신채호는 당시 “내일 올지 말지 모르는 도둑놈(서양) 때문에 지금 오는 도둑놈(일본)을 받아줄 순 없다”며 ’아시아 연대론‘을 반박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안중근의 ‘동아시아 연대론’은 허브, 즉 중심국가를 부정하는 ‘수평적 연대’의 논리였다. 그래서 안중근은 다른 ‘수직적 연대론자’들처럼 강대국 일본을 추종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입장에서 일본을 ‘굽어보며’ 걱정해주고 조언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미국의 패권에 반대하면서 중국을 생각한다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되새겨볼만한 태도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중근은 당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런 동북아 협력체제에 대한 국제적 승인을 받자고 주장했다. 세계질서하에서 보편성을 얻자는 얘기다.
“일본이 앞서 말한 것 같은 (평화적인 의미의) 패권을 얻은 뒤 일, 청, 한 세 나라의 황제가 로마교황을 만나 서로 맹세하고 관을 쓴다면 세계는 이 소식에 놀랄 것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종교 가운데 3분의 2는 천주교이다. 로마교황을 통해 세계 3분의 2의 민중으로부터 신용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한 힘이 된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 공동안보체제와 공동군대를 만들자는 것, 각국 회원들이 돈을 부담해 공동은행과 공동화폐를 만들고 이를 각 지역 개발사업으로 연결하자는 것. 일본의 자국 중심적인 정책이 동북아 평화를 파괴하고 일본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호혜적이고 다자주의적인 삼국 간 관계를 확립하자는 것. 그리고 이러한 지역연합을 국제질서 속에서 조화시키자는 것. 이틀이 바로 안중근이 그렸던 ‘동양평화론’의 얼개다.
안중근 포럼과 환황해 코리도
20여년 전부터 안중근을 연구하며 자료를 모아온 김영호 학장은 동양평화론을 상기시키면서 “지금은 ‘신동양평화론’이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동북아는 중국 1극시대에서 일본 1극시대로, 그리고 미소 지배로 흘러왔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게 보면 동북아에서 진정한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이 가능한 시기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이 틀을 만든 사람은 안중근 뿐입니다.”
이 같은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김 학장은 당시 안중근이 동북아 거점으로 여겼던 다롄에서 정기적으로 ‘안중근 포럼’을 여는 사업을 현지 관계자들과 만나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왜 다롄일까.
“안중근 의사가 당시 여순(현재 다롄에 포함됨)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 거점이었고, 중국 역시 구 만주지역 전체 향방과 맞물려 여순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인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 동북아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죠.”
곧이어 김 학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당시 동북아 각국이 충돌하던 이런 지정학적 특성을 지금은 한국이 지니고 있습니다.” 내년에 1회 행사가 열리게 될 ‘안중근 포럼’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환황해권 코리도(corridor) 구성으로 나뉘어 진행될 전망이다. ‘환황해권 코리도 구성’이란 주제엔 상해-천진-심양-신의주-남포-인천-목포-후쿠오카 등 황해를 둘러싼 각국, 각 도시의 CEO들을 모아 동북아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한편 김 학장은 남북한과 중?일이 함께 추진하면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안중근이 처형당한 1910년 3월 26일 밤, 여순감옥의 간수장은 그의 유해를 묻으면서 그곳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그 지도를 물려 주었는데 그녀의 신원은 이미 파악한 상태라고 한다. 유해발굴의 필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오히려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적 문제들이다.
“남과 북이 모두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중근입니다. 그래서 중국쪽 이야기는 한국측이 유해를 발굴하려 나서면 북측에서는 ‘안중근은 북쪽 사람’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는 거지요. 중국측에서 우리 편을 들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한, 북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안중근의 유해를 찾는 작업 자체가 그가 생전에 이야기했던 동양평화론의 틀을 갖춰야 가능한 셈이다. 그동안 남북한 정부는 수차례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중국에 발굴단과 대표단을 보낸 적이 있으나 모두 실패한 바 있다.
‘신동양평화론'
김영호 교수가 생각하는 ‘신동양평화론’의 일단은 그가 미군감축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안타까워하며 내놓는 이야기에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미 미군철수를 통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랬다면 우리 정부는 차라리 ‘미군감축을 계기로 동북아 모든 나라가 동시에 군축을 하고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동북아 비핵화 지대를 만들자’며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어서 그는 동북아공동군축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과 경제협력으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한중일 각 나라가 10개년 계획으로 1년에 5%씩 군비를 감축하면 500억 달러가 모일 수 있습니다. 이 돈을 동북아개발은행 자금으로 넣으면 되지요. 동북아엔 잠재력 높은 개발사업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북3성과 한반도를 잇는 중화학공업 벨트를 건설하면 동북아 각국은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벨트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 러시아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사업과도 연결될 수 있지요. 또 동북아 철도, 운송망과 정보네트워크 구축과도 연결됩니다. 이는 모두 엄청난 경비가 필요한 사업들로 개발은행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은행이 있어야 국제금융자본과 재일교포의 자금과 러시아를 끌어들일 수 있지요.”
“허브가 아니라 회랑이라야 공동번영한다”
김영호 학장은 이후 동북아시아가 다음의 세가지 구도 중 하나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새로운 대리전 장소로서의 분단된 한반도
△남한이 중국으로 기울면서 남북한 화해공조, 이에 따른 4 : 2 구도(남-북-중-러 : 미-일) △미중일러의 화해-조정하는 형태로서 남북통합.
그러면서 김학장은 특히 두 번째 방향과 관련해 자신의 독특한 입장을 토로했다.“북한이 남한을 미국한테서 떼어놓아 동북아시아를 4대2구도(심지어 일본까지 포섭해 5대1구도)로 만들려는 전략에서 추진하는 남북공조-화해협력 방향에 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동맹과 민족공조를 양자택일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이 둘을 조화시키는 고도의 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실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그 고도의 전략이란 어떤 것입니까.
“한국이 6자회담에서 ‘플레이어’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대북송금특검과 부시정권 등장 이후의 한미동맹-민족공조에 대한 양자택일 식 접근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북한과 미국한테 동시에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민족공조를 계속 방해해온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족공조와 한미동맹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미국을 하나의 단일한 존재로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동안 주로 미국내 보수와 한국 내 보수가 서로 결합했는데, 이상적인 방향은 미국내 개혁세력과 한국내 개혁세력, 여기에 북한 내 개혁세력이 결합하는 방향일 것입니다. 또한 한국이 동북아의 ‘플레이어’로서 (미-중-일 간의) 조정자 역할을 못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섣불리 중심국가(허브) 이야기를 한 탓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그만큼 경계를 하기 때문에 중-미 사이에서 진짜 한국이 맡아야할 조정자 역할도 못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조정역할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결과적으로 ‘중심’이 될텐데 미리 결과부터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중, 일 각국은 중심이 되려고 하지말고 ‘경제와 평화의 코리도(corridor-회랑, 통로)’가 되려고 노력해야 공동번영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 ‘동북아 통로론’은 특정 국가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각국이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과 교류의 ‘통로’ 역할을 하자는 얘깁니다. 일국주의에서 다자주의로 접근하자는 거죠.”
“한국은 ‘어부지리’로 가야한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질서의 격변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유럽에서 독일-프랑스-영국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등이 아닌 어부지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새우등’이 아니라 ‘어부지리’로 가야 합니다. 안중근은 여순에 동북아평화 거점을 두자고 했습니다. 그때 미일중러가 탐냈던 지역이 여순이었다면 지금은 한반도가 그 성격을 지닙니다. 그렇다면 21세기 동북아 평화의 거점도 바로 한반도인 셈입니다. 안중근 플랜으로 가면 미일중러가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하나의 평화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군축, 공동개발은행, 공동화폐, 공동 기술 인프라 구축 같은 주장들을 바로 이 지역 평화거점인 한국이 대담하게 주장하고 나서야 합니다. 이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오늘날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디지털말 2004.7.15]
'국제주의자’ 안중근의 이루지 못한 꿈, 동북아의 수평적 연대
안중근과 신동북아시대 / 동양평화론
이태준 기자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다. 미국이 최근 진행 중인 병력 재배치의 속내는 지금까지의 동북아 패권에 효율성까지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재적 주적’인 중국을 겨냥,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면서 주한, 주일 미군의 작전지역을 은근히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야망도 만만치 않다. 단적인 예가 북핵 6자회담에서 핵심적 역할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의 안간힘이다. 중국은 6자회담 사무국을 북경에 두고 싶어 한다. 아편전쟁 뒤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관계를 주도하는 셈이다. 일본의 우익세력들은 북핵을 빌미로 군비를 늘리며 평화헌법을 개정할 준비를 완료했다.
남북한과 일본을 가운데 두고 중국, 러시아, 미국이 둘러싸고 있는 이 동북아 지역에, 앞으로 상황에 따라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다시 충돌하는 ‘신냉전구도’가 자리잡을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에서 호혜적 협력과 평화체제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시점이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동북아의 수평적 연대’를 꿈꿨던 안중근에게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 동북아 삼국과 세계를 감탄시킨 일대 쾌거였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은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당시 그는 여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동양평화론을 마무리할 때까지 형집행을 미뤄달라고 법원에 요청한다. 안중근은 실제로 항소하지 않았으나 일본측은 선고일로부터 불과 한달여 지난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을 살해한다. 그래서 동양평화론은 서문에 그친 미완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뒤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장과 면담한 기록(「청취서」)이 발견되어 그가 구상했던 동양평화론의 밑그림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중국 대련시에서 개최할 예정인 ‘안중근 포럼’을 준비 중인 김영호 유한대 학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에 따르면 이 면담 기록을 발굴한 사람은 최서면 전 동경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이다.
김영호 학장은 “안중근은 한국민족주의자이며 국제주의자였다”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도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동양평화론자로서 취한 행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에 이미 안중근은 “동북아 각국의 독립과 주체적 참여를 전제로 한 국제평화주의의 틀을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안중근 플랜’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그 ‘틀’의 핵심을 현대적인 용어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동북아 공동안보체제와 국제평화군 창설
△ 동북아 개발은행과 공동화폐 발행 사업
이제 안중근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안중근의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구상
“새로운 정책은 여순을 개방한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에서 대표를 파견해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한 뒤 이를 공표하는 것이다. … 일본을 노리는 열강에 대응하기 위해 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의 3국에서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다루게 한다. 세 나라의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는 2개국 이상 어학을 배우게 하여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이 높아지도록 지도한다.” (「청취서」, 강조는 인용자)
당시 일본이 강점하고 있던 여순은 동북아를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그리고 안중근은 일본 역시 이완용 등 “개만도 못한 놈”(안중근의 표현)을 앞세워 “한국 황제를 비롯해 한국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여순을 강점하는 등의 행위로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자국 중심의 야욕으로 이웃 나라까지 희생시켜가며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는 바람에 다음과 같은 일이 예측되기 때문이었다.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의론이 한청(韓淸) 양국인의 폐부(肺腑)에서 용솟음쳐서 상하 일체가 되어 스스로 백인의 앞잡이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형세이다.”
또한 “러시아, 청국,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일본을 응징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자국에 대한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 중과 다시 호혜적 관계를 정립, 동북아 평화를 확립해야할 터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안중근은 일본에게 여순을 다시 중국에 돌려주고 이곳에 한, 중, 일 삼국의 대표로 이루어진 (동양)평화회의를 설치하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세계 열강이 노리는 여순을 한, 중, 일이 공동 관리하자는 것이다. 현대적 용어로 풀자면 일종의 ‘동북아 공동안보회의’인 셈이다.
이렇게 동북아 국가 간의 평화가 이루어지면 일본도 서구세력의 침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한, 중, 일 삼국이 국제평화군을 편성해서 공동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중근의 ‘동북아 경제협력’ 구상
한편 안중근은 한국과 청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재정부족이라는 경제적 문제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정책이 궁지에서 나온 것임은 나도 이해한다”며 “일본은 재정이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어서 그것을 청과 한국 두 나라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안중근은 일본의 재정난을 일본의 문제로 방치해둘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인 한국과 청이 함께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동북아 3국이 모두 번영하는 방향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도 굉장히 대담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바로 한, 청, 일 3국이 조직한 동양평화회의에서 회원국 수억 명의 국민들로부터 1원씩 모은 것을 자본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이 은행을 통해 공동 화폐를 발행하여 신용을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창출된 신용과 공동 화폐는 일본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를 살린 일본이 한국, 중국과 긴밀히 경제협력을 추진해가면 동양 삼국에서 함께 상공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안중근은 믿었다. 최근의 동북아개발은행이나 한, 중, 일 공동 화폐를 1백년 전의 안중근이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연대의 두가지 길
어쩌면 독자들은 이처럼 일본에 너무도 호의적인 것으로 보이는 안중근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우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재정문제 때문에 이웃 나라를 침략하기에 이른’ 일본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구상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20세기 초 한일 양국 지식인들 중 상당수가 ‘침략적인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가 연대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상당수의 한국 지식인들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기 위해 중국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전 독립협회장 안경수는 1900년 동경에 망명해있던 중 잡지 『일본인』을 통해 △한청일 철도개통으로 무역로 확보 △서해안 공동어장개발 △한중일 자원 결합한 공동경제발전 등을 주장했다. 명분은 ‘삼국 군사동맹과 상업동맹으로 서양 침략을 막아내자’는 것이었다.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이기(李沂) 같은 사람은 “동양삼국은 3개 다리로만 같이 설 수 있는 솥과 같다”는‘삼정론’(三鼎論)을 항일지였던 『대한매일신보』에 기고한 바 있다. ‘한중일 연대론’은 당시의 지식인 사회를 풍미했던 이념이었다. 심지어 이토오 히로부미도 나름대로의 동양평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1908년 11월4일자 『만주일일신문』에는 이토의 ‘극동평화론’이란 연설이 실려있다.
그러나 이 같은 ‘연대론’엔 엄청난 위험이 숨어 있었다.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연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과연 어느 나라를 중심으로 뭉칠 것인가. 즉 어느 나라가 중심국가(허브)가 되느냐의 문제였다. 그리고 20세기 초의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일본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안경수는 이후 친일파로 전락하고 만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의식이 동북아 국가 중 최강인 일본의 힘에 기대자는 것으로, 그리고 친일론으로 폭주한 결과이다. 이토의 극동평화론도 “‘동양평화를 위해 한, 중이 죽어달라는 이야기였다”고 김영호 학장은 설명한다. 이를 ’동아시아의 수직적 연대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 ’대동아 공영론‘도 그 아류다. 그래서 신채호는 당시 “내일 올지 말지 모르는 도둑놈(서양) 때문에 지금 오는 도둑놈(일본)을 받아줄 순 없다”며 ’아시아 연대론‘을 반박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안중근의 ‘동아시아 연대론’은 허브, 즉 중심국가를 부정하는 ‘수평적 연대’의 논리였다. 그래서 안중근은 다른 ‘수직적 연대론자’들처럼 강대국 일본을 추종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입장에서 일본을 ‘굽어보며’ 걱정해주고 조언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미국의 패권에 반대하면서 중국을 생각한다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되새겨볼만한 태도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중근은 당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런 동북아 협력체제에 대한 국제적 승인을 받자고 주장했다. 세계질서하에서 보편성을 얻자는 얘기다.
“일본이 앞서 말한 것 같은 (평화적인 의미의) 패권을 얻은 뒤 일, 청, 한 세 나라의 황제가 로마교황을 만나 서로 맹세하고 관을 쓴다면 세계는 이 소식에 놀랄 것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종교 가운데 3분의 2는 천주교이다. 로마교황을 통해 세계 3분의 2의 민중으로부터 신용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한 힘이 된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 공동안보체제와 공동군대를 만들자는 것, 각국 회원들이 돈을 부담해 공동은행과 공동화폐를 만들고 이를 각 지역 개발사업으로 연결하자는 것. 일본의 자국 중심적인 정책이 동북아 평화를 파괴하고 일본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호혜적이고 다자주의적인 삼국 간 관계를 확립하자는 것. 그리고 이러한 지역연합을 국제질서 속에서 조화시키자는 것. 이틀이 바로 안중근이 그렸던 ‘동양평화론’의 얼개다.
안중근 포럼과 환황해 코리도
20여년 전부터 안중근을 연구하며 자료를 모아온 김영호 학장은 동양평화론을 상기시키면서 “지금은 ‘신동양평화론’이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동북아는 중국 1극시대에서 일본 1극시대로, 그리고 미소 지배로 흘러왔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게 보면 동북아에서 진정한 다자주의와 국제협력이 가능한 시기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일찍이 이 틀을 만든 사람은 안중근 뿐입니다.”
이 같은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김 학장은 당시 안중근이 동북아 거점으로 여겼던 다롄에서 정기적으로 ‘안중근 포럼’을 여는 사업을 현지 관계자들과 만나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왜 다롄일까.
“안중근 의사가 당시 여순(현재 다롄에 포함됨)을 중립화하여 동북아 평화거점으로 삼자고 한 것은 20세기 초 여순은 러시아의 해양진출기지이면서 일본의 대륙침략 거점이었고, 중국 역시 구 만주지역 전체 향방과 맞물려 여순반도의 소유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동북아 분쟁의 도화선인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을 중립화하고 공동관리함으로써 동북아 평화와 연대의 길을 열자는 게 안 의사의 주장이었죠.”
곧이어 김 학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당시 동북아 각국이 충돌하던 이런 지정학적 특성을 지금은 한국이 지니고 있습니다.” 내년에 1회 행사가 열리게 될 ‘안중근 포럼’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환황해권 코리도(corridor) 구성으로 나뉘어 진행될 전망이다. ‘환황해권 코리도 구성’이란 주제엔 상해-천진-심양-신의주-남포-인천-목포-후쿠오카 등 황해를 둘러싼 각국, 각 도시의 CEO들을 모아 동북아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한편 김 학장은 남북한과 중?일이 함께 추진하면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안중근이 처형당한 1910년 3월 26일 밤, 여순감옥의 간수장은 그의 유해를 묻으면서 그곳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 그 지도를 물려 주었는데 그녀의 신원은 이미 파악한 상태라고 한다. 유해발굴의 필요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오히려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적 문제들이다.
“남과 북이 모두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안중근입니다. 그래서 중국쪽 이야기는 한국측이 유해를 발굴하려 나서면 북측에서는 ‘안중근은 북쪽 사람’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는 거지요. 중국측에서 우리 편을 들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한, 북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안중근의 유해를 찾는 작업 자체가 그가 생전에 이야기했던 동양평화론의 틀을 갖춰야 가능한 셈이다. 그동안 남북한 정부는 수차례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중국에 발굴단과 대표단을 보낸 적이 있으나 모두 실패한 바 있다.
‘신동양평화론'
김영호 교수가 생각하는 ‘신동양평화론’의 일단은 그가 미군감축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안타까워하며 내놓는 이야기에 드러난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미 미군철수를 통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랬다면 우리 정부는 차라리 ‘미군감축을 계기로 동북아 모든 나라가 동시에 군축을 하고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동북아 비핵화 지대를 만들자’며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어서 그는 동북아공동군축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과 경제협력으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한중일 각 나라가 10개년 계획으로 1년에 5%씩 군비를 감축하면 500억 달러가 모일 수 있습니다. 이 돈을 동북아개발은행 자금으로 넣으면 되지요. 동북아엔 잠재력 높은 개발사업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북3성과 한반도를 잇는 중화학공업 벨트를 건설하면 동북아 각국은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벨트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 러시아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사업과도 연결될 수 있지요. 또 동북아 철도, 운송망과 정보네트워크 구축과도 연결됩니다. 이는 모두 엄청난 경비가 필요한 사업들로 개발은행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은행이 있어야 국제금융자본과 재일교포의 자금과 러시아를 끌어들일 수 있지요.”
“허브가 아니라 회랑이라야 공동번영한다”
김영호 학장은 이후 동북아시아가 다음의 세가지 구도 중 하나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새로운 대리전 장소로서의 분단된 한반도
△남한이 중국으로 기울면서 남북한 화해공조, 이에 따른 4 : 2 구도(남-북-중-러 : 미-일) △미중일러의 화해-조정하는 형태로서 남북통합.
그러면서 김학장은 특히 두 번째 방향과 관련해 자신의 독특한 입장을 토로했다.“북한이 남한을 미국한테서 떼어놓아 동북아시아를 4대2구도(심지어 일본까지 포섭해 5대1구도)로 만들려는 전략에서 추진하는 남북공조-화해협력 방향에 대해선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동맹과 민족공조를 양자택일식으로 접근하지 말고 이 둘을 조화시키는 고도의 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실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그 고도의 전략이란 어떤 것입니까.
“한국이 6자회담에서 ‘플레이어’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대북송금특검과 부시정권 등장 이후의 한미동맹-민족공조에 대한 양자택일 식 접근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북한과 미국한테 동시에 신뢰를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이 민족공조를 계속 방해해온 것은 사실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족공조와 한미동맹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미국을 하나의 단일한 존재로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동안 주로 미국내 보수와 한국 내 보수가 서로 결합했는데, 이상적인 방향은 미국내 개혁세력과 한국내 개혁세력, 여기에 북한 내 개혁세력이 결합하는 방향일 것입니다. 또한 한국이 동북아의 ‘플레이어’로서 (미-중-일 간의) 조정자 역할을 못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섣불리 중심국가(허브) 이야기를 한 탓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가 그만큼 경계를 하기 때문에 중-미 사이에서 진짜 한국이 맡아야할 조정자 역할도 못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조정역할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결과적으로 ‘중심’이 될텐데 미리 결과부터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중, 일 각국은 중심이 되려고 하지말고 ‘경제와 평화의 코리도(corridor-회랑, 통로)’가 되려고 노력해야 공동번영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 ‘동북아 통로론’은 특정 국가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각국이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과 교류의 ‘통로’ 역할을 하자는 얘깁니다. 일국주의에서 다자주의로 접근하자는 거죠.”
“한국은 ‘어부지리’로 가야한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질서의 격변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유럽에서 독일-프랑스-영국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 속에서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고래싸움에 터지는 새우등이 아닌 어부지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새우등’이 아니라 ‘어부지리’로 가야 합니다. 안중근은 여순에 동북아평화 거점을 두자고 했습니다. 그때 미일중러가 탐냈던 지역이 여순이었다면 지금은 한반도가 그 성격을 지닙니다. 그렇다면 21세기 동북아 평화의 거점도 바로 한반도인 셈입니다. 안중근 플랜으로 가면 미일중러가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하나의 평화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군축, 공동개발은행, 공동화폐, 공동 기술 인프라 구축 같은 주장들을 바로 이 지역 평화거점인 한국이 대담하게 주장하고 나서야 합니다. 이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오늘날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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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 못온사이에 이무슨 텔레파시 인가욤?ㅋㅋㅋ
윗말씀...비스므리한것이 어제 간 종로의 책집 입구에 떡! 하니 걸려있던데,
마이클 패튼이던가..하던 남자의 말이라는^^
그게 아마도 you are what you eat....였던가 아닌가... 전혀 자신이 안 서는데여? 모, 말씀대로 습관적으로 먹는것도 당근 말씀대로 이지만여.
음 종로서적에서 정품 영화 씨디를 세일하는데 3,900원. 열댓개 눈에 띄는 걸 다 주워들고 특별히 (쉘브르의 우산>도 집어들고^^ 안숙선, 경기민요집, 심수봉! 나휸아! 드디어 전집 샀어여. 넘 신나는 오디씨 넘많이 들고 오버하는데, 친구가 한수 더 뜨더군여. 여기 휴대용 장바구니 있으니 이걸 써라....^^ 와우., 그 장바구니 진짜 좋아요. 접으면 작은 지갑사이즈, 펼치면 완전 무, 배추 다 들어갈정도로 커진다는. 그래서 내친김에 환경오염 안 시키는 기름때 닦는 무세제 행주같은? 모, 아크릴실로 뜬 그런거...왜...그거 아시나여? 세제 안쓰고 물로만 닦을수 있는거져. 그게 이쁘게 뜬게 하나에 천원이라서 열두개 샀져. 색색으로! 선물하기 좋겠더라구여.
긍까, 안봐도 이것저것들이 다 비됴 인거져?ㅎㅎㅎㅎㅎ^^
오...행복한 봄쇼핑하셧기 바람다엿
물론 잠늠이라믄 행주보담은 툇마루집가서리 뇌리끼리~한 동동주 한병에다 투자하것쥐만..+_+/
인사동 툇마루의 누리끼리한 동동주 진짜 좋은술이져. 저도 모,,,옆에 동동주가 있엇다면 책이건 뭐건 다 제껴놓고, 당근, 동동주를~~~ㅎㅎㅎ
근데, 경기민요집은 안숙선씨의 노래인데,....명불허전! 진짜 노래 잘 하심당. 에구. 노래가락이나 들으며 동동주나 퍼 마시면 진짜 세월가는줄 모르는 한량이 될판인데, 모, 그렇지 않아도 제가 한량스런 여자긴 하지욤.ㅋ~~
툇마루집은 긍까, 녹두부침과 가오리무침이 안주로 일품인데 아우....또 먹구싶다는...내친김에 녹두전이야 해 먹을수 있을것이므로...음. 동동주가 필요해지는 순간이로군욤! 택임져여~~! 퇵임! 튀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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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툇마루집 음식은 오리지날 이북식이에여. 주인의 부모가 이북분인데 그분들의 레시피가 그대로 전수된 솜씨에여. 아랫층은 왜 좋지 않으세여? 그냥 마룻바닥이고 앉아서 먹을수 있으니 좋던데여. 외려 새로생긴 이층이 너무 무미건조한 음식점 같던데여. 앉아먹는게 힘든 저는 이층에 자주 갔지만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면서여? 뚝배기 멋을 찾는 오디씨도 장맛에 접근하는 편인데, 소개하신 용산의 막걸리집은 꼭 잧아갈거에여. 음. 올가을이 되겠네여! 그 때까지 더욱 번창하여 나를 기다려 주는 막걸리집이 되길~~~ㅋ
근데 그집은 쥐콧구녕만한 1층길가홀에서 먹는게 제맛인데..본까 지하층으로 널핀데는 넘 영업집갓고 영 아니올씨다더라고요.
오늘도 노동자가 임금체불 항의하다가 맞아죽었다는데,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니들은 다 맞아죽어도 한번만 더 찍어달라고 징징대는...3번
글쳐 꼭 무슨 아편쟁이덜이 덜덜덜 떨믄서 딱 한방만 주라 그러는거 가타여 @@;;;
국제주의자? 인터내셔널리스트? 그래서 안중근은 흔히 생각하는 민족주의자가 아닐지 모른다는 이야기인지... 도통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하기는 박노자가 친일파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오래만에 들어오니 점호를 하셨군요.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오디시 잘지내시지요.(^^)
무슨 '주의자'는 말 그대로 항상 곤란에 빠지게 되있는..그런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겠지요. 안중근의 거사에는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있는거와는 달리 국제주의적 측면도 있다는 뜻인듯 함미다.
잘 기시지요? *^^*
정말 이리 하실껀가여?ㅋ~~
긍까,
노네님께 제 안부를 묻고 계신것은
노네님 필방 출입 계약서에 서명해두신
어떤 내용인가여?
글타면....케헴!!
노네님.
무님은 잘 지내시고 계신걸까여?ㅋ~~^^
ㅎㅎㅎ 안갈차주...임닷 :D
안부야 모...직접 여쯥는 방법도 있긴하져. 칫!
마자마자...정말 그렇군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