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미디어오늘에서 ‘미디어, 이성의 시대는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상당히 인상깊게 읽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 속에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해야할 미디어가 뭔가의 의도에 따라 전반적으로 무력화되어가는 현황을 비판하면서. 마지막에서 인터넷에 대해서도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를 창출하기보다는 종종 가공의 연대의식과 거짓 친숙함만을 만들어낼 뿐이다”라고 아프게 지적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좌절감은 사실 누구나 다 때때로 느끼는 것인데, 최근 강준만은 <‘인정투쟁’ 민주화시대의
명암>이라는 한겨레21 칼럼에서 인터넷 언어폭력적 경향을 지적하면서 나름대로 비관론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섯부른? 비관론은 자칫 문제해결을 그르치기 쉽다. 나의 생각은 위 칼럼들을 쓴 프리드만이나 강준만과는 달리 그런
문젯점들은 인터넷이 아닌 인터넷이용자 즉 사람의 문제이며, 본질적으로는 석기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개인 및 집단간의
이해충돌을 조절하는 과정,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실에 존재하는 의사소통 (및 갈등조정) 체제가 이러한 정치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만큼 민주적이지 못하고 무능한 것이 그대로 인터넷으로까지 연장되어 투사되고 있는 방증이라고 잡넘은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점차로 확장되고 있는) 公민들의 말-발언들로 진행되는 정치가 정착된 근현대이후에 의사소통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지고 절실해 진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는 완전히 개방적이고 다원적이면서 동시에 참여자의
익명상태가 그 특징일 뿐 아니라, 인터넷세계 속에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직 언어-말-의사 뿐이다. 그러므로 인터넷에
참여하는 각 개인들이 현실에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의사소통할 능력이 미흡한 상태에 있었다면 그 현실에서 <사적
익명성>을 사회의 <한사람의 자율적-민주적 公민>으로 소화-승화해 내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웠듯이, 이 새로이
발견된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도 그런 요소는 고스란이 그대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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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점에서 보자면 익명상태의 의사소통이야말로 기명상태의 의사소통보다 어쩌면 더 정확하고 직접적으로 그 사회의 민주적 능력을 표현하 고 있는지도 모르며, 뒤집어보자면 민주적-자율적 의사소통을 연습하고 길러 갈 수 있는 좋은 훈련장일 것이다. 말하자면 인터넷이 현실의 한 중요한 부분-층위로 자리잡은 지금, 소통이라는 채널을 통해 이제는 역으로 인터넷이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나 할까?
인터넷의 이런 특징은 전 세계에서 인터넷이용도가 가장 높다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의 소통측면의 장점을 이용하여 생겨난 성공-실패사례들을 살펴봄으로서도 알 수 있지 않나 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비교해보게 되는 관심사례는 오연호로 대표되는 오마이뉴스라는 성공사례와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개혁당이라는 실폐사례이다. 왜 오마이뉴스는 성공할 수 있었으며 개혁당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을까?
노네가 보는 가장 큰 차이는 우선 오마이뉴스는 언론을 지향하였다는 점, 즉 말-사실보도-소통방법 등의 측면에 집중한다는 (그리고 그 보도 혹은 소통의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편집자를 포함한 시민기자의 자율적-민주적 소통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아직은 과정상의 돌출? 문제이며, 가령 오연호의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개진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까지는 크게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문제발생 가능성은 원칙적으로는 기사간의 차이에서도 드러날 수 있겠지만, 잡넘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차이랄까, 관심을 갖고 관찰하며 대비해야 할 위험성의 징표랄까...는 기사와 댓글들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댓글에서는 익명성이라는 버거운 <자유>에 잡아먹혀버린 나머지 俗惡화된 의견?들이 그대로 표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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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통합 등 정당의 핵심적 운영사안에 있어 처음에 표방된 다원성-민주성-자율성이 ‘표면적 화장’을 넘어서 스스로를 입증하는 그 어떤 실질적 도구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조차 조직적으로? 봉쇄당한것이 아니었나 싶었던 것은 이러한 예정된 운명을 비극적으로 웅변한다. 말하자면 개혁당은 그 실제에 있어 사상누각이었을 뿐 아니라, 설령 모래밭이라 하더라도 네덜란드 주민들처럼 끈질기게 모래땅을 굳혀나가면서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개미당원들의 노력은 당내 의사소통과정에서 철저히 장식용으로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아마도 현대의 급격하게 다원화해가는 사회에서 그 사회를 포함한 공동체들의 성립-생존-발전을 위해서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주장하고 비판하며 공유해 나가는 의사소통과정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만큼 공동체구성원들의 민주성, 자율성, 특히 관용을 체화한 의사소통능력, 나아가 의사소통문화가 중요해지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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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화방지용 사족) 당연히 마찬가지로 필넷운영에 있어서도 노네가 주장하는 이러한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소통의 가치에 대해서 참고할 점이 있으리라 본다. 뭐 있어주면 고맙고, 없다싶으면 마는거고...^^
(사족2) 위 강아지사진 두개는 재미있어서 예~전에 저장해놓은건데, 출처를 깜빡 잊었습니다. 아시는분이나 사진주인께서는 코멘트로 알려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2005. 9. 24, 약간 손봄200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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