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들어선지 1년이 넘은 지금, 그동안 '절차적 민주화의 완성'인지 뭔지 하는 수면아래 잠겨있다 썰물이 빠져나간 후에 드러난, 각종 쓰레기로 뒤덮인 부두
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특히, 언젠가 적어보았듯이, 우리사회 지식산업은 한두분야를 제외하고는 지식생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전부 수입지식에 의존하는 수입판매-AS산업에 머물러 온, 요컨데
상태?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해온 결과를 지금 보고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잠늠생각에도 우리사회에서 실제로 지식이 생산되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은데, 가령 거대자본이 국제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수요에 의해 추동되는 일부 물질과학분야를 들 수 있겠다. 글나 이것도 본질적으로 (현대의 과학기술 지식의 생산과정에 만연한 문제이긴 하나) (국가를 포함한) 대자본의 소비를 위한 것일 따름이고 일반(지식)소비자들과는 완전히 유리된, 그런점에서 어쩌면 '민주주의'나 '공화국', 뭐 이런류의 수입지식보다도 못한, 지식을 소비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대자본을 거치지 않고서는, 고로 그에 목매지 않고서는)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무용지물이라는 문제는 여전하다.
다른 한 분야는 인터넷 등 쌍방향미디어를 통한 참여민주주의 확장에 대한 지식이다. 이 분야는 그 씨가 되는 1차지식들은 (사회변천과정에서 일종의 우연? 내지 변덕?으로)
해 냈으되 그걸 키우고 다듬어 실체화 해 나가는 지식생산활동은 많이 부족한점이 있고, 따라서 선진제국에 비해 진도가 더디다 내지 주도권을 상실햇다 하겠다. 왜냐면 그 토양이라 할 오프라인 민주주의나 의사소통문화의 빈곤과 함께 지식생산의 담당자여야 할 관련 학문들이 (수입판매에는 유능해도 직접 생산하는데에는) 전혀 무능하기 때문이라 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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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입판매-AS산업으로서의 지식산업이 초래하는 문제는 일상생활 전분야에 걸쳐 이미 그 병증이 드러난지
오래다. 가령 법학의 경우 한국 법산업의 당면한 중심현안 자리를 (사회정의, 각종 권력남용, 표현과 양심의 자유 등) 중요한
공적-사적 사안에
대해 엄정한 법적논리라던가 그 법철학적인 근거에 대한 법학다운 정치한 논쟁이 아니라, 고등고시 내지 앞으로는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배타적인 자격을 부여하는 로스쿨 인가 내지 정원논쟁, 뭐 그런등속이 꿰차고 있는데에서 그 처참한 현실이 드러난다.
당연히 이런 습속?버릇?을 통해 교육되고 생산된 법조인들, 중에서 생산된 대법관, 이나 아나콩콩 대법원장이라 한들, 특별히
뾰족한 수는 없다.
이처럼 (딱히 법학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다양한 법지식은 나의 일신의 안녕과 영달을 보장해주는
<도구>일때만 의미가 있지, 그것에 위협이나 장애가 되는 경우에는 생까고 모른척-없는척 하는 것...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다는 '관습헌법'쯤 되기라도 하는건지? 따라서 작금에 언론지면을 장식하는
법조현황은
이런 '한국법학'에 관한 한, 지극히 '합리적'인 결말이라 하겠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개망신'(으로
여길찌 어쩔찌는
몰것으나)을 인제 더이상은 못참겟다는 정도의 자부심은
남아있는 법학산업이기를....연목구어의 심정으로나마 기대해본다.
요
즘 너나할것없이 한숨나오는 경제쪽에서도, 우리경제의 핵심문제중의 하나인 재벌문제의 경우 서구경제학에는 재벌개념이 없고 따라서
이에대한 이론도 없는 고로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지식산업으로서의 한국경제학은 당면한 이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이
원천적으로 미흡하거나 결여될 수 밖에 없으리라 나는 여긴다. 그나마 그 알량한 수입경제학 조차도 눈치껏 잘나간다 싶은
한분야에다 올인하는 투기형 지식산업인 것이, 언필칭 한국을 대표하는 모 대학에서 유일한 마르크스경제학 담당교수의 퇴임 후
그자리를 또다른 계량경제학 전공자(인지 뭔지 하여튼)가 채웠다고 한다. 잠늠이 다 알수는 물론 없으나, 재벌을 연구하는 극소수
국내파학자들의 성과도 아직 엄정한 정치경제학적 개념화를 거쳐 이론화에 다다랐다기 보다는 자료 축적과 그 분석에 근거하는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안타까운 느낌을 잠늠은 가지고 있다.
양의학도 대동소이. 같은
돈이 들더라도 가령 수백만명이 혜택을 보는 말라리아백신 개발보다도 소수라도 부유층을 위해 PET상용화나 중이온빔 암치료기술
개발에 쓰는것이 더 돈이 되는 것인데, 그런 불공평? 비경제적?인 경향?풍조? 조차도 선진국의 것일 뿐, 우리사회에서는 그렇게
외부에서 생산된 의학정보-지식을 독점적으로 수입-유통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기초의학이라는
분야가 얼마전만 해도 없었고 의학자체가 지금도 과학이라기보다는 암기과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기초가 없는 건물을 우리는 사상누각이라고 부른다. 황우석과 같은 사례는 아주 재수없게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게 아니다. (한편 韓의학에 대해서는 준비나 전제를 분명히 해 둠이 없이는 문제가 옆으로 새기 십상이므로 일단
넘어간다)
생각난김에...글고 말나온김에^^;;...교육도 사회의 전반적인 재생산구조를 결정하는 핵심연결고리라는
중요성에 걸맞도록 교육철학이나 교육방법-제도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생산구조가 아니라 교사임용 및 승진과 그와 관련된 행정적
약탈구조가 교육산업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가령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본식 식민교육철학을 그대로 베낀 '국민교육헌장'이라는것이
있어서 코흘리게 초등까지 달달 외도록 했었고, 지금은 (잘하건 못하건)교원노조를 빨갱이로 모는 캐캐묵은 옛날영화를 마치
최신작인양 생까며 재개봉중이다. 이 결과는 입시교육이라는 문제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나 해결에 동참할 능력이
교육산업
내부에는 없다는 이중의 문제로 나타난다. 그외 인문학이나 이공계 학문도
크게 다를바는 없다고 잠늠은 여기는 편이다. (지가 무슨
용가리통뼈라고..쬐끔이라믄 몰라도 크게 많이 달라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겟냔 말이지...-_-;;)
3
그
렇다면 지식소비분야는 문제가 없는가? 지식이 다양한 공적-사적 문제해결에 이용되고 있거나,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지식의
생산이나 (하다못해) 유용한 수입을 촉발하고 있는가? 누구나가 다 알듯이 답은 부정적이다. 우리사회의 지식의 소비는 공사를
막론하고 문제해결을 위한것이라기보다는 장식용인 경우가 더 많다. 가령 우리사회는 문제나 갈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교양의
중요한 요소이며, 따라서 결국 정치에 기대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만사형통의 모습'을 연출하는데에 훨씬 더 익숙하고 또
관대하다.
이런 정치적 연출에 눈치없는 장애물로 등장하지 않도록 지식들은 분류되고 (암암리에 혹은 대놓고)
배제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식의 그러한 분류, 인증과 유통-판매, 나아가 소비교육-훈련까지, 모두 유통업자들 - 대표적으로
언론과 거기 기생하는 소규모 지식오퍼상이나 소매상들 - 의 담당이다. 가령 조선일보가 정치-경제면을 제외한
(영악한것덜..^^) 그 지면에서 때로 '진보적' 필자나 기사를 선별적으로 영입하거나 전하면서 '위장된 불편부당'의 효과를
도모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 여긴다. 요컨데 '지식경제'에서는 언론이 '정부'나 마찬가지고, '지식경제'도 실물경제처럼 얼마든지
매판적일 수 있다는 소리 되겠다.
그러고보면 우리사회 지식경제의 핵심 문제는 (있지도 않은, 그래서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 '지식생산'나 '지식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실생산도 실수요도 거의 없는 가운데 언론을 중심으로 한 '지식유통업자'들의
마켓팅으로 가수요만 창궐한, 지식의 거품경제라는 것이라 하겠다. 이 지식유통업자들의 매판적 성격이 강할수록, 그만큼 더 이들은
사회내부에서 지식의 실소비-실수요가 발생하고 그것을 뒷받쳐주는 실생산-실공급이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저지하려 들기
마련일 것이다. 이쯤에서는 '公적 정보에 접할 권리 혹은 알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들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라는 말이나,
'급한넘이 우물판다'는 말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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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긴 하나, 이는 (지식을 재화로 바꾸어 대입하여)
실물의 생산-소비구조와는 유리된 채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와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작금에
우리사회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파국적현상들과 같은 위기를 지식산업에서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싶기도 하다. 이리저리 읽고 눈치껏
이해한 결과는, 적절한 규모의 견실한 내수경제가 있으면, 그리고 그 내수경제의 불씨를 살려나갈수가 있으면, 이 파국의 확율은
그만큼 낮출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한국경제 무역의존도, 최초로 90% 돌파 - 내수 점점 쇠락, 국제위기때 직격탄 맞는 구조 (
뷰스앤뉴스 기사, 2009.11.10추가)]
그렇게 보자면, 지식의 내부적 생산-소비가 전혀 없이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할 뿐
아니라, 실수요-실공급의 균형이 아니라 수입업자의 마켓팅과 그에 따른 가수요로 유지되는 매판적 지식유통산업이 사회의 지식경제의
형편을 좌우한다면? 아마 그 파국은 벌써부터 와있는 것이어서 위기인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지적 파산을 피해나가기에 급급한,
상시화된 지적위기를 살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형편이 우리의 지적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어떤 철학자가 '(언어적)이성'의 정점으로 간주하였던
국가란
물건이, 우리사회에선 어찌된 일인지 외려 그 국민을 상대로 '언어적 희롱'을 일삼는것을 넘어서서 이젠 스스로의 존재근거조차
(그게 존재근거인줄도 모르고) 제손으로 곡괭이로 찍어대는것을 보면, (설령 허접한것이라 할찌언정 '국가이성'이라는 물건이
우리사회에 존재햇다는 전제 하에) 국가이성의 파산...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파산이 나을까, 아님 아직 파산이고 말고 할것도 없는게 나을까? 이것이 문제로다. -_-;;;
덧 :: 이건 버스정류장의 나무들인데, 어제아침에 보니 마치 벌레처럼 발그스레한 새싹? 봉오리?들이 수도 없이 밀고나오고 있었다.
암탈업시 멀쩡하게 잘만 굴러가는 넘^^;;;을 두고 되도안한 시비거는건 이쯤하고, 담에는 웬 되도안한 것덜한테서 턱도없이 무슨넘으 희망을 찾겟다고 디비는건지...를 시간나믄 함 해봐야것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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