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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마음 2009/05/06 23:19
언젠가 인문학을 사적 상상의 공적 가치에 대한 연구..였나? 하여튼 그거 비스무리하게 정의해본 적이 있다. 사적상상과 그 공적가치를 연구하는 인문학이 한사람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지만, 다른사람의 사적상상(물들)을 연구하는 것 역시 인문학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이때 그 다른사람은 아무도 가본적이 없는 곳에 가서 살아본 사람들 - 가령 작가나 철학자나 예술가 등등 뿐 아니라 익명의 어떤 타인들일수도 있는 - 이다. 그곳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 바로 바깥일수도 있고, 아주 동떨어진 외딴곳일수도 있겠으며, 심지어는 사람들 사는 지역 내부에 있는 미지의 사적 공간일 수도 있겠다. (삶이라는 공간의 기하는 지리적공간의 그것과는 다르므로 비유는 비유에 그칠 따름이다.) 

어떻건간에, 이곳을 처음 가는건지도 모르고 그저 힘들게힘들게 처음으로 갔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런저런 계기로 혹은 우연히 그 근처를 산책하다 묘한 인기척을 느끼고 그의 자취를 따라 그 영토를 방문하게 되는 두번째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다. 이 불가피한 차이만 뺀다면, 그 두 삶 혹은 세계가 그순간 그렇게 하나로 겹쳐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이 성립한다 할 수 잇을 것이며, 이 차이를 의식하고 극복? 체화?하려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모든 인문학이 필연적으로 역사학을 잉태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덧 :: 뷰님의 글중에 '그가 열어주는 새로운 지평을 맞이'한다는 부분에서 탁 삘꽂히는 바람에 사라지기전에 몃자 적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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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삘꽃와 오징어

    Tracked from 민노씨.네 2009/05/07 05:21  삭제

    새벽에 잠이 안와서 이리저리 좋아하는 블로그들을 둘러보다가... .... 이곳을 처음 가는건지도 모르고 처음으로 갔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런저런 계기로 혹은 우연히 그 근처를 산책하다 묘한 인기척을 느끼고 그의 자취를 따라 그 영토를 방문하게 되는 두번째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다. 이 불가피한 차이만 뺀다면, 그 두 삶 혹은 세계가 그순간 그렇게 하나로 겹쳐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이 성립한다 할 수 잇을 것이며, 이 차이를 의식하고 극복?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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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노씨 2009/05/07 04:09  Modify/Delete  Reply

    언제나 청년의 마음으로 사물을 사물을 둘러싼 사유의 향기들을 접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이 굳어져서 그런지 '삘꽃'이 피지 않네요... (물론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요) 너무 오래 지속되는 감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너무 오래 오래 지속되는 무기력 때문인가 싶기도 합니다...

    올해엔 노네님을 한번 뵈야 할텐데 말이죠! ㅎ
    안부를 겸해 넋두리를 적어봅니다.

    추.
    "모든 인문학이 필연적으로 역사학을 잉태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좀더 풀어주시길 기대해봅니다. ^ ^

    • 잠머 2009/05/07 21:49  Modify/Delete

      트랙백 감샤함닷^^
      아 그건 밑에 전문가이신 뷰님이 설명해주셨지만,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분야에 대한 (물론 정리되지 않은) 개인적 생각을 중얼거려 본것임미다. 이미 있는 인물, 사건, 내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텍스트..를 디다보고 나름 이해할려는것은 다 역사학의 싹이라 볼 수 있겠지요.^^*
      글고 올해안에 꼭 여기 놀러오삼. 먹는거 자는거 노는거는 물론이고 등치도 나랑 비슷하신듯 하니 입는것도...ㅋㅋㅋ :)

  2. 2009/05/07 04:21  Modify/Delete  Reply

    말씀하신 대로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의식의 지평이 만나는 (해석의) 행위는 반드시 역사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또 거기에서 나온 해석이 (해석자의 역사성/사회성을 반영/포함하는) 역사적인 해석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해석의 역사성(더 나아가 contingency)을 인정하지 않고 그 해석의 초월성을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그야말로 지식권력 심지어 폭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반면에, 제가 끄적인 글을 보면 작품연구라는 것이 좀 감상적이랄까요 지극히 감정이입 내지 감정적인(empathetic and affective)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 연구에 임할 때는 최대한 일차 사료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것이 기본 출발점이겠고, 어떤 형태로든지의 체험(embodied experience)은 그 위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이미지를 연구대상으로 다루는 쪽에서는, 사실 무수히 많은 방법론들이 존재하지만, 좀 오래 된 방법론을 예로 들자면 도상학이 아닌 도상해석학이 인문학이 지향하는 바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요. 미술사학이 인문학인 이유도 그것이고요...

    좀 다른 얘기지만, 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의 난점은 더 이상 aesthetic experience로 작품감상이나 해석이 불가하다는 점이죠.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자면 이제 aesthetic experience는 aesthetic attitude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해석은 물론 감상까지도 이제는 informed audience만이 할 수 있다는 건데... 좀 씁쓸합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 잠머 2009/05/07 21:53  Modify/Delete

      뭐랄까, 위 비유를 또써먹자면, (감정이입을 일부 포함하는) 태도가 시선을 그쪽으로 붙잡아두는 것이라 본다면, (감정이입의 다른 부분과) 1차사료의 궁구는 그사람의 입장이 되기 위해 그 세계과 입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슴다. 근데 시선이 딴데로 향해 있다면 암꺼도 아니닌깐..근까 꼭 하나 고르라믄 경험보다는 태도가 더 유용하게 확장된 경계선?분수령?이 될것 같기도 함다.

      전에 랑시에르때도 그런거 같은데, 그런점에서 아름다움을 깨닫는것과 보다나은 삶을 깨닫는 과정은 비슷한점이 참 많은것 같슴다...같은건지는 몰것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