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 대해 한마디는 기어이 하고...이젠 삼켜야겠다. 내게남은 노무현의 가장 강한 인상은 그에게는 실패나 성공이 그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어떤 과정중의 한 매듭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삶에 어떤 일관성을 찾아내 부여하고 또 견지해 나가는 것이 그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던 듯 하다. 이런 일관성은 당연히 (바보로 불리는) 그의 강한 자아로 나타났으며, 눈앞의 이익을 위해 일관성을 포기하고 그 변명조차 포기한 자들에게는 문자그대로 '파괴해서 지워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성공이나 실패가 그의 일관성을 이루는 내용이 아니엇듯이 그의 여러 정책적 오류나 변화를 생각할 때 그것 역시그가 일관성을 견지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었던듯 하다. 모르긴몰라도 정치인임에도 그의 일관성은 어떤 구체적인 정책이나 정치적 신조에 있다기보다는 자신이 확신하는 인간적신조들을 현실정치에서 구현? 그대로 실천?하려는데에 잇엇던것 같다. 이점은 썩어빠진 현실정치의 거부, 탈권위와 합리적 시스템화 정책, 또 소통의 강조와 대언론 정책으로 나타났다.
반면 (당연히 그의 직무라 할)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안법폐지나 재벌 및 사학개혁 같은 정책의 관철에는 결과적으로 무능했으며, 대연정제안에 이르러서는 거의 돈키호테적으로 황당했다. 이점은 그가 '정치공학'을 거부할 뿐 정치 자체에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나 재임중에 진행된 수많은 로드맵 작성 작업들에 비추어보면, 그의 실토대로 정책적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게다가 정치적 반대자들은 다름아닌 조중동일파였으니, 그의 임기내내 그들이 정책을 왜곡하고 그 집행을 흔들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만약 정책이 준비되어 있었다면 대응책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던 사항이라 나는 본다.
그러나 설령 조중동이 왜곡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정책적 실패는 최소한 두가지점에서 예정되 있었거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나는 이제 이해한다. 첫째는 정책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식인 내지 우리사회의 지적 무능이다. '지식은 권력'이란 말도 있듯이, 권력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정직하고 합리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둘째는 정책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사회의 무능이다. 단적인 예로 법을 다루는 검찰이 자신과 이해관계가 겹치는 경우 삼척동자도 비웃을 자기당착적 법집행을 예사로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는 제사보다 젯밥이랄찌, 공무원들이 '공익에 대한 관심이나 진정성'으로 그 직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뿐 아니라, 그런것이 개인에 그치지않고 사회적 풍조로까지 고착되엇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의 문제는 선의나 진정성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데에 잇엇다 할 수 잇다. 워낙 매판적이고 개차반인 우리사회다 보니 선의-진정성은 자체로 매우 소중한 자산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영역이라면 모르겠으되, 공영역에서는 진정성뿐 아니라 일정한 수준의 문제해결능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여긴다. 그렇게 보면 작금의 우리사회는 노무현의 실패를 뒤집는다는게 잘못 뒤집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정성이 없어야된다고까지 오판한 결과...내지 노무현의 정책적 실패들을 부정한 나머지 정치인 노무현을 부정하고, 급기야 인간 노무현까지 부정한 결과..라 할 수 있고, 이는 (조중동 수준의 저질 부추김에도 홀라당 넘어가 놀아나는) 우리사회의 언어적-지적 무능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요컨데 인간으로서는 물론이고 정치인으로서도 노무현은 뒤집을 대상이 아니라 디디고 올라서야 할 대상인 거시다.
다시한번 하늘나라에서나마...평화로우시기를 빈다. ㅠㅠ 2009.5.27
이처럼 성공이나 실패가 그의 일관성을 이루는 내용이 아니엇듯이 그의 여러 정책적 오류나 변화를 생각할 때 그것 역시그가 일관성을 견지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었던듯 하다. 모르긴몰라도 정치인임에도 그의 일관성은 어떤 구체적인 정책이나 정치적 신조에 있다기보다는 자신이 확신하는 인간적신조들을 현실정치에서 구현? 그대로 실천?하려는데에 잇엇던것 같다. 이점은 썩어빠진 현실정치의 거부, 탈권위와 합리적 시스템화 정책, 또 소통의 강조와 대언론 정책으로 나타났다.
반면 (당연히 그의 직무라 할)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안법폐지나 재벌 및 사학개혁 같은 정책의 관철에는 결과적으로 무능했으며, 대연정제안에 이르러서는 거의 돈키호테적으로 황당했다. 이점은 그가 '정치공학'을 거부할 뿐 정치 자체에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나 재임중에 진행된 수많은 로드맵 작성 작업들에 비추어보면, 그의 실토대로 정책적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게다가 정치적 반대자들은 다름아닌 조중동일파였으니, 그의 임기내내 그들이 정책을 왜곡하고 그 집행을 흔들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만약 정책이 준비되어 있었다면 대응책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던 사항이라 나는 본다.
그러나 설령 조중동이 왜곡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정책적 실패는 최소한 두가지점에서 예정되 있었거나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나는 이제 이해한다. 첫째는 정책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식인 내지 우리사회의 지적 무능이다. '지식은 권력'이란 말도 있듯이, 권력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정직하고 합리적인 지식을 필요로 한다. 둘째는 정책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사회의 무능이다. 단적인 예로 법을 다루는 검찰이 자신과 이해관계가 겹치는 경우 삼척동자도 비웃을 자기당착적 법집행을 예사로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는 제사보다 젯밥이랄찌, 공무원들이 '공익에 대한 관심이나 진정성'으로 그 직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뿐 아니라, 그런것이 개인에 그치지않고 사회적 풍조로까지 고착되엇기 때문이다.
결국 노무현의 문제는 선의나 진정성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데에 잇엇다 할 수 잇다. 워낙 매판적이고 개차반인 우리사회다 보니 선의-진정성은 자체로 매우 소중한 자산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영역이라면 모르겠으되, 공영역에서는 진정성뿐 아니라 일정한 수준의 문제해결능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여긴다. 그렇게 보면 작금의 우리사회는 노무현의 실패를 뒤집는다는게 잘못 뒤집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정성이 없어야된다고까지 오판한 결과...내지 노무현의 정책적 실패들을 부정한 나머지 정치인 노무현을 부정하고, 급기야 인간 노무현까지 부정한 결과..라 할 수 있고, 이는 (조중동 수준의 저질 부추김에도 홀라당 넘어가 놀아나는) 우리사회의 언어적-지적 무능을 다시한번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요컨데 인간으로서는 물론이고 정치인으로서도 노무현은 뒤집을 대상이 아니라 디디고 올라서야 할 대상인 거시다.
다시한번 하늘나라에서나마...평화로우시기를 빈다. ㅠㅠ 2009.5.27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약 정리까지 다 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당. ^^
갠적으로 느무 추모일색??인듯 하여 적어본 것인데, 안이나다를까...누구나 이미 다 맘속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을 혼자 떠드는 꼴인지라 며칠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잇엇는데...아무래도 영 쩍팔림다. ㅠㅠ;;;;
쩍팔리다뇨.
정확하신 논리와 객관적인 시각입니다.
잡님!
지난 5월 29일 천붕을 ...... ㅠㅠ
고인의 명복을 두손모아 빕니다
얼마가지 않아 다시 또 다 만나게 될 터인 만큼 얼른 슬픔을 이겨내시고 평화로우시기 바랍니다. ㅠㅠ;;;
추모인들을 그저 감정적으로 휩쓸린 군중으로 보는 시각에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마치 정책상의 실책을 전혀 모르거나 그걸 짚고 넘어갈 비판의식 같은 것이 없어서 저렇게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보는 시각에는... 근본적으로 더 깊은 곳에 어떤 정치적 입장이 끼어들어가 있기 때문에 참 뭐라 할 말이 없어집니다. 선의와 진정성 위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책까지 마련된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합리성도 도구적 합리성으로만 보자면 검찰의 작태나 조중동의 합리성은 얼마나 합목적적이고 효율적인지요. 뭐 딱히 의사소통 합리성이라는 말을 끄집어 낼 필요도 없이 소통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의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그것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언어적-지적 능력이 부족하면 좀더 많은 시행착오를 좀더 오랫동안 겪게 되겠지만, 언어적-지적 능력만이 '이상한 방향으로 기형적으로' 발달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지금 현실에서 충분히 겪고 있다고 보고요.
저도 누구나 맘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렇게 주절거리다 보니 쪽팔리네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원래 상기간에는 좋은 추억만...^^;;;
우선 생각한다는건 언어로 하는것..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상하고 기형적인' 언어적-지적 <능력>을 나는 언어적-지적 <무능>이라 부릅니다. <이상하고 기형적인 언어적-지적 능력>으로는 <애시당초부터 타인에 대한것> 내지 <공영역>은 불가능해?매우어려워?진다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어는 삶의 방식이라..는 주장을 전제로 한다면, 기형적 언어는 기형적 삶 때문일 것이며 공영역이 자리잡은 삶은 소통을 가능케하는 '정상적인' 언어를 낳을것이고, 정서적인 삶은 정서적인 언어를 낳을 것입니다. 요컨데 삶이 정상이고 그 공영역도 탄탄한데도 용케 언어만 이상하고 기형적이며 예사로 소통장애를 일으키는 그런것일 수는 없겟지요. ^^;;
기본적으로 동감입니다. 이전에 박모 교수가 골통보수를 선험주의나 관념론등으로 설명해보려고 했던 그 헛수고가 황당한 이유도 거기에 있죠. '이상하고 기형적으로' 발달한 언어-지적 능력은 당연히 '정상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비판이 들어가 있고, 오히려 순수한 무능력(incapability in genuine sense) 보다도 못한 철저하게 왜곡된 능력(power)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상적인' 언어는 '정상적인' 삶에서 생겨난다고 하는 일면 순환론적인 견해('정상적인' 삶은 '정상적인' 언어 사용으로만 가능하니까요)에 동의하면서도, 제 스스로에게 그 '정상적인' 것의 시원이나 근원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어집니다. 결국 도덕적인 능력(도덕성)이죠. 이미 언어와 이성에 대한 회의와 절망과 좌절을 충분히 겪을 만큼 겪은 세계의 현대사를 목격하면서,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선의와 진정성에 대한 믿음이 아직은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에이^^..얼핏 닭이 먼저냐 오리가 먼저냐^^; 문제인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삶이 먼저겟지요.^^
글고 저는 '정상적'인 언어나 삶에 대해 언감생심 도덕성이나 진정성..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혹은 진정성이나 도덕성에 대한 기대수준이 아주 낮습니다^^;;). 단지 공적 삶이나 공적발언에 있어서 조선일보나 2MB식으로 말을 우습게보는 언어모독 내지 소통거부-위장행위를 중대한 공익침해이자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 알아서하고 사회적으로도 금기시?되는 뭐 그런 정도만 되도 흐미...더이상 바랄께 업겟습니다. 그담은 각자 알아서 하는거져. ^^*;;
솔찍히 조선일보나 2MB식 언어로는 언감생심 언론이나 공직은 커녕 아예 숫제 공영역자체에 발가락 하나도 들이밀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사회가 전혀 없는것도 아니지요.^^;;;
왠 헛소리...그대 같은 사람들이 그의 깊고 긴 내공을 어찌 헤아리랴..한겨레 경향 애네들이 더 좇같다는 걸 증명한 역사적 사건. 쪽팔리는 줄도 모르고 다들 이제서야 역겨운 헛소리들을 늘어놓는다. 알리바이 대면서 과거 지네 행적 명분은 챙기고 싶다는 심리. 아주 본색드러내더라고. 뭐같은 세상이지. 조중동 애네들이야 원래 그런 애들이니 제껴두고 살지만..조중동 없어도 좇같은 건 비슷해..
노무현 지지세력 없으면 지들만으론 좇도 안된다는 거 지난 선거에서 잘 보았을 것이다. 한겨레 경향들은 그게 너무 화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못잡아 안달났던 것이고. 그래도 어쩌냐 노무현 지지세력들 없으면 이쪽은 절대 쪽도 못쓴다는 거. 이번 조문인파 보고 한겨레들이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선 무지 불안했을 것이다. 아프로도 한겨레 경향이들은 노무현 적절하게 밟아놓고 싶을 것이다. 계네 근본이야 변하지 않으니까. 왜? 일단 무식하거든. 20년전 머리속에서 한치도 못벗어났지. 백날을 발광해봐라. 노무현 지지세력들 없이는 절대 기분좋을 날 없을 것이다.
노무현을 아끼는 마음이 사람마다 구석구석 다 같을수는 없겠지요.^^
들러주시고 의견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